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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 기사] 무모하나 아름다운 도전 멈추지 않는 '여성 담임목사' 많아지길 [예배, 여성과 움트다] 어느 40대 여성 담임목사와 '함께 만들어 가는' 교회 이야기 - 최규희
실천신대
조회수 : 1198   |   2022-07-20
어느 날 갑자기 목회를 시작하게 됐다

몇 년 전 칼 바르트 신학 공부 모임에서 알게 된 존경하는 목사님이 전화를 주셨다. 연말에 은퇴를 앞두고 계신데 후임 목회자 청빙을 하고 있노라며 40대 초입에 들어선 내게 목회 의사를 물으신 것이다. 그 교회는 건물을 따로 소유하지 않고, 음식점 공간을 빌려 격주로 예배드리고 있다고 하셨다. 당시 나는 남편이 담임하고 있는 작은 교회에서 교회학교·찬양대 등을 맡아 동역하고 있었고, 주중에는 기독교 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다.

우선 기도해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지금 돌이켜 보면 당시 개인적 여건도 좋지 않았고, 무엇보다 담임 목회를 생각해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히 준비도 부족했기 때문에, 기도해 보겠다고 말씀드린 것 자체가 무리수였다. 당시 내가 준비된 것이라고는 남편과 함께 목회하면서 담임목회자의 책임과 고충을 직간접적으로 겪어 왔다는 점뿐이었다.

'내가 담임 목회라니…' 도무지 말도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남편과 상의했다. 남편은 진지하게 내 스스로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결정해야 할 일 같다고 했다. 두 사람이 함께 목회의 길을 걸으며 항상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결정을 내려 왔기 때문에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지만 내심 놀라기도 했다. 나를 '사모'가 아닌 한 사람의 '목회자'로 대해 줬기 때문이다.

사실 어려서부터 보수적인 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내 안에 가부장적 사고와 습관이 가득하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목사 안수도 한참 미루고 전도사로 남편과 함께 사역하다가, 기독 여성 모임을 통해 용기를 얻어 목사 안수도 받고, 조금씩 내 안의 가부장성을 인지하며 변화해 가는 중이었다.

그 무렵 나는 많은 여성이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냉정하고, 자기평가도 대체로 부정적이라는 것, '자신 없음'과 '자격 없음'이라는 감정으로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의식적으로 "네!",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마침 다른 교회 주일예배나 헌신 예배 설교 부탁이 이어지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애써 침착하게 "네"'라고 답하고 다녀오기는 했지만, 매번 용기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야 했다.

아무리 그래도 담임 목회는 소위 말하는 '차원이 다른' 주제였고, 나 개인뿐 아니라 가정, 섬기던 교회 공동체에 미칠 영향이 컸기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몇몇 선배님께 조언을 구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40대 여성 목회자를 담임목사로 청빙하는 일이 거의 드문 한국교회 현실에서 이는 '시대적 부르심'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감당하기 벅찬 도전이었기 때문에 설렘보다는 두려움이 앞섰지만, 우리는 미쁨이 없으나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의 변함없는 '미쁘심'(딤후 2:13)을 신뢰하기로 했다.

아직까지 대부분의 담임목사가 남성인 상황에서, 사모는 '1+1' 옵션처럼 당연히 남성 목사를 따라오리라고 여겨지는 것이 한국교회 문화다. 교회 상황에 따라 사모는 적극적인 역할을 요청받기도 하고, 때론 아무런 목소리 없이 지내는 소극적 내조를 요청받기도 한다. 심지어 사모의 역할에 대한 상충되는 의견이 공존하기도 하는데, 사모이면서 동시에 신학을 공부한 전도사·목사들에게도 교회가 기대하는 바는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의 목사로서 내가 내린 담임 목회 결단은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여러 상황 때문에 남편은 그 이듬해 첫 담임 목회지에서의 10년 사역을 마무리하고 사임했다.

함께 만들어 가는 교회 공동체
내가 담임하게 된 S교회는 2007년 '성서 연구, 십자가 정신, 예언자 정신, 하나님나라 운동 정신'으로, 역사의 한가운데서 종말론적 참여를 감행하며 수고와 위로를 함께 나누고자 창립된 교회다. 나는 2019년 12월 마지막 주일에 교우들과 처음 만나, 2020년부터 2대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다. 우선 기존 예배 장소인 음식점을 벗어나 조금 더 예배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 나섰는데, 아는 목사님을 통해 서울 종로구 옥인동에 위치한 작은 정원이 있는 아름다운 카페에서 주일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됐다.

나는 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에서 실천신학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으로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게 됐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령 안에서 함께 친교를 나누며 '세움'을 받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보냄'을 받은 공동체다. 그러니 교회 모든 구성원이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나라 가치를 품고 삶을 살아 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교회가 잘되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에 있다. 다시 말해, 사랑이 필요한 세상과 타자를 위해 교회가 존재한다. 이러한 생각에 '과연 주님께서는 내가 여성 담임목사로서 어떤 모습으로 목회해 나가기를 원하실까' 하는 고민이 더해졌다. '여성주의적 목회'는 내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고민은 교우들과 직접 만나면서 조금씩 달라져 갔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말씀을 맡은 이로서 목회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그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각 지체의 빛깔과 목소리 역시 중요하다는 것을 거듭 느끼게 됐다. 결국 그 말씀을 세상 속에서 살아 내야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내 준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어떠어떠한 목회를 해야 한다'는 목표 의식과 비전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마음을 열고 교우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나와 우리 교회 공동체에게 교회란 '함께 만들어 가는 공동체'라는 의식이 형성됐다.

처음부터 우리 교회가 어떤 공동체이길 바라는지 교우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정답을 정해 놓지도, 서둘러 결론을 내리지도 않았다. 목회자를 비롯해 연장자·직분자 등 어느 누구도 발언을 독점하지 않기를 바랐다.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서로를 존중하며 대화를 나눌 준비가 돼 있었고, 각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냈다. 교회 규모가 작으니 서로 그때그때 논의해서 다양하고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첫해에는 공교회로서 의미를 살려 '교회력에 따른 설교'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이후에는 설교에 질문과 대답을 포함된 대화가 들어가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이듬해부터는 특별 절기 때를 제외하고는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대화식 말씀 나눔 시간을 가졌다. 목회자가 먼저 각 본문의 이해를 돕는 설명을 하고 핵심 주제를 전하면, 교우들이 함께 질문과 깨달은 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상대적으로 시간 제약을 많이 받지 않는 유연함을 가진 교회여서 이런 시도가 가능했던 것 같다.

이렇게 대화하며 교회를 함께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 교회의 지향이 조금씩 드러나게 됐는데, 우리의 지향은 우리가 가진 조건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우선 교우들의 거주지가 멀리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공간을 소유하기보다 공간을 '공유'하는 공동체를 지향하게 됐다(최근 공유 경제적 관점에서 예배당 공유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많이 있는데 반가운 일이다). 또한 주일예배 외에 다른 주중 예배나 모임이 없는데, 이는 모이는 예배보다 흩어져 드리는 '삶의 예배'를 중시하는 우리의 지향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진다. 이러한 우리의 지향은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더 빛을 발했다. 공간 중심, 모이는 예배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오히려 빠르게 온라인 예배로 전환할 수 있었고, 일방향적인 매체가 아닌 쌍방향적 대화가 가능한 형태의 온라인 예배·모임을 하며 더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만일 우리 교회 교우들이 가까운 지역에 모여 살고 있었다면, 그 강점을 살려 해당 지역 공동체들과 접촉점을 찾아 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우리 상황에 맞게 이웃을 섬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해마다 사회 선교 기관(환경 운동, 인권 운동, 청년 운동, 이주민 선교 등)을 정해 정기 후원하기로 했고, 간헐적으로 서명운동이나 캠페인, 긴급 구호(우크라이나 어린이와 난민을 위한 헌금 등)에 참여하며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있다. 공간 유지·관리에 드는 비용이 적고, 목회자가 이중직 사역을 하고 있어 교회에 생계를 의존하지 않는 구조이기 때문에, 규모는 작지만 '자립 교회'이고, 매해 사회 선교 구좌도 늘려 가고 있다.

예배드리던 공간이 일반 카페에서 '기후 카페'로 변하면서 우리 교회도 '기후 위기는 인류와 온 피조 세계의 생존 문제'이자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매우 시급하고 중대한 과제'라는 것을 자각하게 됐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기독교기후위기비상행동'에 동참하며 해마다 '환경 주일 예배'를 드리고 '창조절(Season of Creation)'을 지키고 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가정이 몇몇 있다 보니 반려동물과 함께 드리는 예배도 꿈꾸게 됐고, 그런 소망을 담아 주보에 있는 '함께 교회를 섬기는 이들'란에 반려동물의 이름을 추가하는 재미있는 시도도 했다.

최근 '움트다'가 주관한 '배움트다'에서 '알아 두면 쓸모 있는 ESG와 교회 교육' 강의를 듣고, 우리 교회의 지향들이 ESG 개념과 잘 연결되는 것 같아 놀라웠다. 'E(환경·Environment)'와 '인간 중심 넘어 피조 세계 중심', 'S(사회·Social)'와 '지역적 선교 넘어 사회 선교', 'G(지배 구조·Governance)'와 '목회자 중심 넘어 공동체 중심'을 서로 연결할 수 있겠다. 가치 지향적인 'MZ 세대'와 맞물려, 기업들이 지속 가능성을 위해 사회적 책임과 공유 가치 창출을 고민하는 이때, 한국교회도 ESG에 주목해야 한다고들 하는데, 우리 교회의 고민과 다양한 시도가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니 감사하다.

"우리 S교회 공동체가 '조각보' 같은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조각보'가 다양한 크기와 색감, 질감의 천들이 이어져 하나의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그 어떤 모양의 것도 감싸 안을 수 있는 것처럼, 다채롭고 평등하며 포용적인 하나님나라 공동체로 함께 성장해 나가길 기도합니다." (S교회 주보 1면 문구)

우리 교회는 작고, 특수하며, 고정돼 있지 않다. 교우들 구성에 따라 얼마든지 어떻게든 변화할 수 있다. 최근 어린 두 자녀를 둔 가정이 함께 예배드리기 시작했는데, 앞으로 어린 교우들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려 한다. 제도권에 속해 있지만, 요즘 늘어나고 있는 소위 '비제도권 교회'와 더 가깝다. 그렇기에 일반적인 교회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다양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주는 차원에서 하나의 사례가 될 수는 있을 것이다.

지난 인터뷰에서 나눈 것처럼, 나는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세상, 하나님의 꽃밭에 있는 작은 들꽃 같은 교회이면 좋겠다. 화려한 꽃도, 수수한 꽃도, 이름 모를 들풀과 들꽃도 모두 아름답고 각자 존재 이유가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다만 우리 교회처럼 평등한 대화를 통해 함께 만들어져 가는 교회 공동체가 조금 더 많아지면 좋겠고, 무모하나 아름다운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여성 담임목사도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내가 좋아하는 조동화 시인의 시 '나 하나 꽃 피어'를 선물한다.

"나 하나 꽃 피어 /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 말하지 말아라 /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 결국 다른 방식으로 풀밭이 온통 /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
나 하나 물들어 /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 말하지 말아라 /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 결국 온 산이 활활 /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나 하나 꽃 피어')

규움 / 주중에는 기관 사역을 하고 주일에는 교회를 섬기는 이중직 40대 여성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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